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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하나 만으로 돈을 버는 일이 이제는 외국의 사례만은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아이디어로 성공한 많은 사례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독학으로 중학교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늦깍이 대학생이 되었었고, 안정된 회사를 나와 자신만의 독특한 아이디어 하나로 성공을 이룬 박희주 단아이 대표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다음은 중앙일보에 실렸던 기사의 내용입니다.
길거리에서 휴대전화기를 쓰다 보면 배터리가 방전되면서 난감해지는 경우가 있다. 급하게 전화가 올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이럴 때 유용한 휴대전화 액세서리가 미니충전기다. 급한 대로 25∼40분을 꽂고 있으면 15∼30분의 연속 통화가 가능하다.
이 같은 미니충전기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고안한 사람이 단아이 박희주(40) 대표다. 이 제품은 최근 100만 개 판매를 돌파했다. 그는 2005년 ‘미니셀’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를 시작해 지난해까지 4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는 미니셀과 관련된 특허와 실용신안, 디자인, 상표, 저작권 등 국내에서만 70여 개의 지적재산권을 갖고 있다. 그는 “충전기를 휴대전화에 매달고 다니려면 일단 작고 가벼워야 하고, 외모까지 깜찍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디자인했다”며 “이제 해외에서도 주문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올 3월 일본에 5만 개를 수출했다.
그는 미니셀로 성공하기까지 공장에서 일했고 독학으로 공부하는 등 험난한 과정을 겪었다. 강원도 인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형광등 공장을 다녔다. 목수 일을 하던 아버지의 경제력으로는 중학교조차 가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15살 때는 인근 전자제품 회사에서 스프레이로 색을 입히는 작업을 했다. 주변에서 “머리가 아깝다”는 얘기를 숱하게 듣던 터라 그는 17살이 되면서 독학으로 중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이후 경기기계공고를 졸업한 뒤 과학기술대(현 KAIST) 금속재료공학과에 합격했다.
그는 “KAIST 입학 뒤 기숙사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하는 친구를 만나면서 눈이 크게 떠졌다”고 전했다. 어렸을 때 공장에서 스프레이를 뿌리며 색감을 즐기던 시절이 떠오른 것이다. 그는 1학년 2학기에 산업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꿨다. 1994년 졸업 직후 삼성전자에 취업, 디자인실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주로 오디오 제품을 디자인했다. 그러던 2000년 토털 디자인 회사를 꿈꾸며 자본금 200만원으로 서울 목동 오피스텔에서 벤처기업을 세웠다.
자신감은 충분했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2003년 남에게 디자인을 컨설팅하려면 제조업도 해봐야 한다는 생각에 휴대전화기에 매달 수 있는 미니 손전등 ‘셀 라이트’에 손댄 것이 화근이었다. 수억원대의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21명이던 직원은 4명으로 줄었다. 그는 “디자인 이외의 시장과 유통을 돌아보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담배도 끊고 중국과 일본을 돌아다니며 머리를 식힌 것이 전화위복이 됐다”고 말했다. 셀라이트에 충전기를 겸비한 미니셀 아이디어도 이때 나온 것이다.
그는 “산업디자인은 한국인의 천재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분야”라며 “한국인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순간 실행력이 뛰어나고 아이디어가 좋아 산업디자인 분야에서 세계 일류가 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신의 성공에 더불어 우리 민족의 재능까지도 염두에 둔 인터뷰가 무척 인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성공은 결국 독창적 아이디어와 이를 추진하는 본인의 의지의 결합체인 것 같습니다. 많은 교훈을 전해주는 소식이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