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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몽고군이 세계 최강의 기마부대를 보유하고 있었고, 이들이 수만리나 떨어진 적진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칭기즈칸이 몽고군에게 보여준 신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칭기즈칸은 대칸이 되기 전부터 신뢰를 몸으로 보여줍니다. 칭기즈칸이 아직 강대한 힘을 갖추기 이전에 칭기즈칸은 다른 부족과의 전투에서 그의 아내를 납치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그때부터 무려 2년여를 적의 장수에게 잡혀 있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주변의 부족장들을 규합하여 자신의 억울함과 자신의 부인을 납치한 자의 부당함을 성토하며 군대를 모으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2년여만에 적장을 쓰러뜨리고 자신의 아내를 되찾게 됩니다. 하지만 칭기즈칸이 자신의 아내를 되찾았을 때는 이미 그의 아내는 적장의 아이를 갖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칭기즈칸으로서는 피눈물을 흘릴만큼 억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되찾아온 자신의 아내가 여전히 자신의 첫번째 부인임을 천하에 알리고 자신의 아내가 낳은 아이이기에 당연히 자신의 자식이라고 선포합니다. 한 번 자신의 사람이었던 자는 그 어떤 허물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신뢰의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많은 이들은 칭기즈칸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되고, 자신의 부인이 낳은 적장의 아이는 대몽골족의 장손으로 남아 용맹하게 전장에서 활약하게 됩니다. 또한 그는 그를 따르는 군인들에게도 무한한 시뢰를 받게 됩니다. 몽고군이 머나먼 타향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울 수 있었던 이유는 몽고군이 전사하면 반드시 그 시체를 찾아 낙타에 싣고 고향으로 돌아왓던 칭기즈칸이 보여준 신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도저히 시체를 싣고 오지 못할 경우에는 그의 가족들에게 철저한 보상을 하엿다고 합니다. 기록에 보면 몽고군이 군대에서 사망할 경우 만약 노비가 낙타로 죽은 주인의 목을 낙타에 싣고 온다면 주인의 가축과 재산을 지급하고, 다른 사람이 그것을 가져온다면 처와 노예 그리고 가축과 재산을 주었다거 합니다. 그래서 몽고 군은 죽어도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일념에서 더욱 용감하게 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칭기즈칸의 신뢰는 아군에게만 보여졌던 것이 아닙니다. 칭기즈칸은 자신에게 항복하는 국가나 사람에게는 철저하게 모든 것을 보장해 주었습니다. 항복하지 않는 국가에는 철저하게 응징하였지만, 항복하는 국가에는 한 없는 자비를 보여줬던 것입니다. 이런 칭기즈칸의 신뢰를 알기에 몽고군과 싸우지 않고 항복하는 국가도 부지기수 였던 것입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책이라고 했던 손자의 가르침이 다시 한번 생각나는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