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UNITY

다양한 교육 정보와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야구선수 재키 로빈슨의 혁명...

 메이저리그에 대해 조금만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이 이름이 결코 낯설지 않으실 것입니다. 위대한 선수로서도 그 가치가 남다르지만, 더불어 야구장에서 백인과 함께 뛸 수 있는 장을 연, 그리고 수 많은 야유와 편견을 이겨내고 자신의 가치를 지켜낸 위대한 혁명가로도 자리매김 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지금의 미국은 흑인 대선 후보가 최고의 지지율을 얻고 있는 현실이지만, 얼마전까지도 인종에 대한 편견과 투쟁은 민주주의의 본고장이라고 외치는 미국에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럼 재키 로빈슨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는 기사의 내용입니다. 

 지금으로부터 61년 전인 1947년 4월 15일에 20세기 최초의 아프리칸 아메리칸 메이저리거인 재키 로빈슨이 데뷔하였다. 천팔백팔십0년대 중반 메이저리그에서 아프리칸 아메리칸 플레이어가 퇴출된 후, 메이저리그는 백인들만의 독무대인 화이트리그에 불과했다. 메이저리그에 참가하는 것이 원천 봉쇄된 아프리칸 아메리칸 플레이어들은 니그로리그를 조직해서 메이저리그의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항하였다. 통산 2,500경기 이상에 등판해서 2,000승 이상을 올렸다고 말해지는 사첼 페이지, 통산 972홈런을 기록한 것으로 말해지는 \'검은 베이브 루스\' 조쉬 깁슨, 역대 최고의 리드오프로 평가되고 있는 쿨 파파 벨, 조쉬 깁슨의 라이벌로서 \'검은 루 게릭\'이라고 불린 벅 레오나드 등 메이저리그에 뒤지지 않는 수많은 스타 플레이어들이 니그로리그를 장식하였다. 
 기라성같은 니그로리그의 스타 플레이어를 제치고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에 입단한 것이 재키 로빈슨이었다. \" 니그로인 그와는 같이 플레이를 펼칠 수 없다 \" 고 이적을 요구한 팀 동료도 있었고, 상대 팀의 팬은 물론이고 다저스의 백인 팬들로부터도 야유와 비난을 받는 것은 일상다반사였다. 게다가, 카디널스와 같은 팀은 경기 자체를 거부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의도적인 빈볼이나 상대의 스파이크에 유니폼이 찢어지고 피가 나도 재키 로빈슨은 흥분하지 않고 인내하였다. 

단지 자신의 실력을 필드에서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였다. 그런 그의 태도에 사람들은 조금씩 문을 열기 시작했다. 직간접적인 폭력 속에서 한시즌을 보내면서도 그는 타율 0.297, 12홈런, 29도루 등 상당히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그리고, 이 해에 처음으로 제정된 신인왕에 선정되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신인왕\'을 \'재키 로빈슨 상\'이라고 부르고 있는 이유도 초대 신인왕인 그를 기리는 의미에 있다. 
 물론 재키 로빈슨 혼자서 인종 차별이라는 거대한 벽을 허문 것은 아니었다. 주위의 강력한 반대 속에서도 그와의 계약을 밀고 나간 다저스의 공동 오너 겸 GM인 브랜치 리키는 물론이고, 오너 회의에서 아프리칸 아메리칸인 재키 로빈슨이 메이저리그에 참가하는 것에 대해서 15 : 1이라는 일방적인 반대에도 승인한 커미셔너인 알버트 챈들러, 그가 있는 다저스와 경기를 거부할 경우에는 출장 정지 처분은 물론이고, 리그에서 강퇴시키겠다고 강력하게 대처한 내셔널리그 회장인 포드 프릭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메이저리그의 흑백 분리주의 속에서도 아프리칸 아메리칸 야구를 계승 발전시킨 많은 니그로리그의 공로자들과 흑백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서 노력한 아프리칸 아메리칸 사회운동가 등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있었기에 재키 로빈슨이 20세기 최초의 아프리칸 아메리칸 메이저리거가 될 수 있었다. 

1949년에는 타율 0.342, 16홈런, 124타점, 122득점 등을 기록한 재키 로빈슨은 리그 MVP에 선출되었고, 메이저리그에서 10시즌을 보내면서 다저스를 6번의 리그 우승과 1번의 월드시리즈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1956년을 끝으로 은퇴한 그는 1962년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흑백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사회 운동가로서 활동하였다. 다저스는 그의 등번호인 \'42\'번을 1972년에 영구결번시켰고, 그가 데뷔한지 50주년이던 1997년에는 메이저리그 전 구단에서 영구결번되는 영광을 누렸다. 또한, 2004년 4월 15일부터는 이 날을 \'재키 로빈슨의 날\'로 제정해서, 그의 업적을 메이저리그 차원에서 기리는 기념일이 되었다. 

재키 로빈슨이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재키 로빈슨은 인종 차별의 철폐라는 상징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가 없었다면, 행크 아론이나 윌리 메이스, 배리 본즈, 밥 깁슨, C. C. 사바시아 등 메이저리그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장식하고 있는 아프리칸 아메리칸이 존재할 수는 없었다. 또한, 이 인종 차별의 철폐는 단순히 아프리칸 아메리칸에게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아프리칸 아메리칸이라는 마이너리티에게 메이저리그의 문호를 개방하게 된 것이 요한 산타나나 페드로 마르티네스, 로베르토 클레멘테 등 히스패닉계는 물론이고, 노모 히데오나 박찬호, 왕첸밍 등과 같은 동양계 선수도 진입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는 점이다. 

재키 로빈슨 데뷔 50주년을 맞이한 1997년 4월 15일 다저스와 메츠의 경기에서 5회가 끝난 후에 당시 대통령이던 빌 클린턴은 \" 모든 미국인들은 재키 (로빈슨)에게 감사해야만 한다. 그가 있었기에, 미국은 보다 강하고 풍요로운 국가가 될 수 있었다. 다음 세대에게 밝은 미래를 전하기 위해서, 그의 유산을 소중하게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 고 말하였다. 빌 클린턴의 이 말은 재키 로빈슨의 업적이 단순히 아프리칸 아메리칸에 한정되지 않고, 모든 인종에게, 또한 모든 차별과 억압에 대한 저항에 있다는 점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사 자체도 너무나 훌륭한 문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또 다시 우리 삶의 위대한 영웅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최준호 칼럼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308 너무나 따뜻한 무료승차권... 관리자 04-07
307 명확한 목적... 관리자 04-04
306 레이건의 유모어... 관리자 04-02
305 \'주민소환 승진제\'... 관리자 03-31
304 등록금 투쟁과 시위저지의 모순사이에서... 관리자 03-28
303 부자나라보다는 합리적인 나라를 꿈꾸며... 관리자 03-26
302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관리자 03-24
301 먹거리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 관리자 03-21
300 노점상에 대한 한 가지 해법... 관리자 03-19
299 중국의 티베트 탄압 과연 언제까지.... 관리자 03-17